[잡설] 지하철 간지남 by 폐묘

지하철 1호선, 어떤 퇴근 시간대의 한 차량.
와글와글하게 사람들이 몰려든 차량에는 역시나 빈자리는 커녕, 좌석의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데 열리는 문 반대편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총각, 노약자석에 삼삼오오 모여 쉼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문이 열리건 사람에 채이건 부비대며 애정행각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커플.

그리고 그 안에 지하철 간지남이 있었다.

검은 수트는 어느 세탁소에 맡겼던건지 쇠라도 갈아낼 듯 날이 서 있고, 번뜩거리는 구두는 지나가는 아가씨 치맛속이라도 비춰낼 것만 같았다. 자신은 차가운 도시의 남자라 말하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손잡이를 비껴잡은 폼은 영락없는 드라마 주인공이다.

환승역이 되자 사람들이 살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간지남은 코앞에 난 자리에 잽싸게 앉았다. 평소 마음에 들어하던 끝자락 자리는 아니지만 서 있는것 보다야 낫겠지.
좌우사람 신경 쓰지 않고 멋드러지게 다리를 꼰다. 시선은 무심한 척 정면도 아니고 측면도 아닌 애매모호한 곳에 던져둔다. 오늘따라 선반에 신문쪼가리 하나 없어서 무료한 퇴근길이 계속될것만 같았다.

다음 환승역에 도착했다. 맞은편 끝자락 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부랴부랴 내리는 모습을 본다. 빠르게 눈치를 본 간지남은 그 자리로 옮겨앉았다.
다시 다리를 꼰 간지남은 한쪽 팔을 팔걸이에 얹고 시크한 척 정면도 아니고 측면도 아닌 애매모호한 곳에 시선을 던진다. 옆자리에 앉은, 추리한 옷차림으로 두꺼운 책을 파고드는 녀석에겐 신경쓸 시간조차 아깝다.

간지남이 내려야 할 환승역이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옆 칸에서 내리면 정면에 다른 열차로 환승하는 통로가 나왔던 것 같다. 냉큼 옆칸으로 이동하기 위해 일어난 간지남.

옆칸 이동을 위해 차량과 차량을 잇는 문에 다가섰다. 손잡이가 없다.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한다. 눈은 문을 열 수 있는 장치를 찾아 빠르게 굴러간다.
자동문인가? 왜 손잡이가 없지? 밀면 되는걸까? 꿈쩍도 않는데? 노약자석 할머니가 쳐다보는 것 같아. 한시라도 빨리 문을 열어야겠는데.
10초의 시간이 식사 전 기도시간 마냥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간신히 문 오른쪽에 붙어있는 버튼을 발견했다. 누르니 열렸다. 다행이다.
안도하며 간지남은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그 광경을 보던 난 두꺼운 책으로 눈을 다시 돌리며 생각했다. 병신같은데 멋지지도 않아.

-2010. 11. 6. 퇴근길에 어떤 사람을 보고 떠오른 이야기.


덧글

  • 제드 2010/11/08 00:10 # 답글

    어차피 병신이라면 멋진 병신이 되라 (?!)
댓글 입력 영역


외부 링크

외부 링크

Secret Wish
NAG's Homepage
전민희 작가 공홈
마이너 노트
눈마새 위키
Now Loading ■■■□□
Derisory Soul

나의 WOW 전투정보실

니아르(마법사)
별철(주술사)
폐묘(흑마법사)
츠바사캣(전사)

나의 마영전 캐릭터

폐묘(피오나)
니아르(이비)

디아블로3 프로필

폐묘

NISIOISIN ANIME PROJECT


괴물이야기(化物語)



상처이야기(傷物語)



가짜이야기(偽物語)



고양이이야기 흑(猫物語 黑)



세컨드 시즌






구글ad

통계 위젯 (화이트)

930
219
2022368